'고래 마니아' 우영우도 읽어…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같은 책

입력 2022-08-10 17:18   수정 2023-04-27 13:57


고래는 신비로운 동물이다. 바다에 사는데도 아가미가 아니라 폐로 숨 쉰다는 점에서 진화의 수수께끼다. 덩치도 남다르다. 몸길이 30m, 무게 200t에 달하는 대왕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로 꼽힌다. 압도적인 몸 크기는 다른 동물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신비와 공포가 뒤섞인 까닭일까. 성경 속 ‘요나’부터 존 밀턴의 <실락원>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고래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중 최고봉은 허먼 멜빌이 쓴 장편소설 <모비딕>(사진)이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이자 ‘고래박사’인 우영우(박은빈 분)가 사람들에게 향유고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묻는 질문(“모비딕 읽어 보셨습니까?”)에 나오는 바로 그 소설이다.

<모비딕>은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고래와 인간의 사투를 그렸다. 선장 에이해브는 흰 향유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물어뜯긴 뒤 모비딕을 향한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소설은 에이해브가 이끄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탄 선원 이슈메일의 눈과 귀를 따라 움직인다. 화자인 이슈메일은 관찰자로서 침착한 시선을 유지한다. <모비딕>은 자연과 인간, 감정과 이성 등 대립적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1819년 뉴욕에서 태어난 멜빌은 포경선 선원으로 일한 경험을 담아 이 소설을 썼다.

600쪽이 넘는 <모비딕>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같은 책이다. 풍부한 상징으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모비딕은 에이해브 선장에겐 인간을 해치는 악의 화신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으로부터 위협받는 자연을 상징한다. <모비딕>을 국내 처음으로 완역한 김석희 번역가는 후기에 “복잡 미묘하게 잔물결이 이는 해수면처럼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다양한 빛을 내는 소설”이라고 썼다.

소설은 고래기름으로 기계를 돌리던 19세기 미국 사회의 초상화다.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포경선은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열망과 욕망을 상징한다. 작가는 피쿼드호에 승선한 사람들이 맡은 임무를 통해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미국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키를 쥔 선장과 항해사는 백인, 천대받는 작살잡이는 유색인종으로 그리는 식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모비딕에 대한 복수심과 정복욕에 불타던 에이해브 선장은 작살로 모비딕을 명중시키지만 그 작살에 묶인 밧줄에 감겨 바다에 빠져 죽는다.

성경도 <모비딕>을 이해할 때 중요한 키워드다. 주인공 이슈메일의 이름은 ‘창세기’ 속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에서 가져왔다. ‘떠도는 자’라는 뜻처럼 이스마엘은 사막을 떠돌았고, 이슈메일은 망망대해를 헤맨다. 에이해브 선장은 ‘열왕기상’에 나오는 폭군 ‘아합’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미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지만, 한동안 <모비딕>은 난파선처럼 버려져 있었다. 저자 멜빌은 살아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에 짧은 부고 기사가 실렸는데, <모비딕>의 철자가 잘못 표기됐다고 한다. 멜빌 사후에 레이먼드 위버라는 유명 평론가가 극찬하면서 소설이 재조명됐다.

오늘날에는 해양문학의 정수, 미국 대표 고전 문학으로 통한다. 글로벌 커피 체인 ‘스타벅스’의 이름은 이 소설 속 1등 항해사 ‘스타벅’에서 따왔다. 국내 여러 출판사가 출간했다. <로마인 이야기> 등을 번역한 ‘스타 번역가’ 김석희, 시인 황유원 등도 번역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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